74. 모히토
난 의심이 많다. 어릴 적에는 일기장의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나 책상 서랍에 작은 종이를 끼워두곤 했었다. 그 이유는 아마 짐작하겠지만 누군가 내 영역에 침입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 누군가는 바로 ‘엄마’ 였다. 엄마가 특별히 미웠던 것은 아니다. 그저 허락 없이 딸들의 물건을 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세 딸을 키우시면서 엄마의 ‘딸 서랍 엿보기’ 스킬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내 작은 종이 스파이의 위치는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난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언니들 서랍을 종종 열어 보고 검사 하시곤 했던 당신이 유독 나한테만 면죄부를 주셨을 리 없지 않은가. 세 딸 중에서 가장 고집 세고, 말 안 듣고 게다가 공부까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일기장에 엄마에 대해서 아주 아주 독하게 투덜거리는 글을 장황하게 써 놓았다. 그리고 날마다 그 강도를 조금씩 올려 나갔다. 결과는 뻔하다. 몇날 며칠 비방의 글이 계속 이어지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엄마가 어느 날 우렁차게 내 방으로 몸을 내던지듯이 들어 오셔서는 “내가 모르는 줄 아냐?! 네가 일기장에 써 놓은 글들 다 봤어!!”하고 소리 지르시며 우박과 눈보라 그리고 번개와 돌풍을 동반한 일종의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야단을 치기 시작 하셨다. 이어서 공부를 안 한다느니 게으르다느니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자존심의 바닥을 긁어대는 말 말 말... 난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슬며시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속으로 대뇌였다. ‘그것 봐. 항상 내 일기장을 몰래 엿보고 있었던 거야.’ 영악한 딸이 놓은 덫에 꼼짝 없이 걸려 든 엄마. 자식을 혼내고 나면 더 아픈 것이 부모 마음인데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새삼 옛날 일을 떠올리니 죄송스럽다. 비밀다운 비밀도 하나 없는 주제에 누군가 나에 대해 알려고 하면 자동인형처럼 방패부터 쳐 버리는 것도 다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날 몹시 좋아하고 따르던 후배가 “선배님도 제가 좋지요?” 하고 생글 거리며 묻길래 대답한 적이 있다. “관찰 중.” 워낙 털털하고 성격 좋은 후배라서 여과 없는 나의 까칠한 답변에 별로 속상해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후배가 계속 날 좋아해 주고 기다려준 덕분에 지금 우리는 만날 때마다 소녀들처럼 꺅!꺅! 소리 지르고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는 나. 하지만 이런 나도 아주 가끔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버릴 때가 있기도 하다. 사랑이 그렇잖아. 아무리 부정하고 겹겹이 방패를 둘러 쳐대도 이미 마음속을 달큰하게 데워놓고야 마는 마력을 가지고 있잖아. 요즘 나로 하여금 그 이름만 떠올려도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녀석이 누군고 하니 다름 아닌 칵테일 ‘모히토’다. 모히토는 헤밍웨이가 사랑한 칵테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관관명소가 된 쿠바의 한 바에 헤밍웨이가 직접 “My mojito in La Bodeq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라고 써 놓은 글이 걸려 있다고 하던데 다이키리와 더불어 모히토에 대한 헤밍웨이의 사랑이 얼마나 남달랐는지를 알 수 있다. 라임과 민트가 곁들여진 독특한 맛은 기분까지 청량하게 해 주는 마법의 힘이 있다. 지난겨울 우리는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사랑에 빠졌다. 매일 만날 수 없기에 애달픈 마음 가득하지만 날씨가 부쩍 따뜻해지고 있는 요즘 ‘전형적인 여름 칵테일 모히토를 여름에 만나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의심 많은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린 모히토. 이번 여름. 나를 좋아해 주고 기다려준 지인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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