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히토 꿈꾸는 고슴도치

74. 모히토

난 의심이 많다. 어릴 적에는 일기장의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나 책상 서랍에 작은 종이를 끼워두곤 했었다. 그 이유는 아마 짐작하겠지만 누군가 내 영역에 침입한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그 누군가는 바로 ‘엄마’ 였다. 엄마가 특별히 미웠던 것은 아니다. 그저 허락 없이 딸들의 물건을 뒤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세 딸을 키우시면서 엄마의 ‘딸 서랍 엿보기’ 스킬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던 것 같다. 언제나 내 작은 종이 스파이의 위치는 놓아둔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난 의심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언니들 서랍을 종종 열어 보고 검사 하시곤 했던 당신이 유독 나한테만 면죄부를 주셨을 리 없지 않은가. 세 딸 중에서 가장 고집 세고, 말 안 듣고 게다가 공부까지 못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하루는 일기장에 엄마에 대해서 아주 아주 독하게 투덜거리는 글을 장황하게 써 놓았다. 그리고 날마다 그 강도를 조금씩 올려 나갔다. 결과는 뻔하다. 몇날 며칠 비방의 글이 계속 이어지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엄마가 어느 날 우렁차게 내 방으로 몸을 내던지듯이 들어 오셔서는 “내가 모르는 줄 아냐?! 네가 일기장에 써 놓은 글들 다 봤어!!”하고 소리 지르시며 우박과 눈보라 그리고 번개와 돌풍을 동반한 일종의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야단을 치기 시작 하셨다. 이어서 공부를 안 한다느니 게으르다느니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자존심의 바닥을 긁어대는 말 말 말... 난 그 혼돈의 소용돌이 속에서 슬며시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분리시켰다. 그리고 속으로 대뇌였다. ‘그것 봐. 항상 내 일기장을 몰래 엿보고 있었던 거야.’ 영악한 딸이 놓은 덫에 꼼짝 없이 걸려 든 엄마. 자식을 혼내고 나면 더 아픈 것이 부모 마음인데 나 때문에 얼마나 힘드셨을까. 새삼 옛날 일을 떠올리니 죄송스럽다. 비밀다운 비밀도 하나 없는 주제에 누군가 나에 대해 알려고 하면 자동인형처럼 방패부터 쳐 버리는 것도 다 의심이 많은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날 몹시 좋아하고 따르던 후배가 “선배님도 제가 좋지요?” 하고 생글 거리며 묻길래 대답한 적이 있다. “관찰 중.” 워낙 털털하고 성격 좋은 후배라서 여과 없는 나의 까칠한 답변에 별로 속상해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 후배가 계속 날 좋아해 주고 기다려준 덕분에 지금 우리는 만날 때마다 소녀들처럼 꺅!꺅! 소리 지르고 폴짝!폴짝! 뛰며 즐거워하는 사이가 되었다. 이렇게 마음을 여는데 시간이 꽤나 걸리는 나. 하지만 이런 나도 아주 가끔 순식간에 사랑에 빠져 버릴 때가 있기도 하다. 사랑이 그렇잖아. 아무리 부정하고 겹겹이 방패를 둘러 쳐대도 이미 마음속을 달큰하게 데워놓고야 마는 마력을 가지고 있잖아. 요즘 나로 하여금 그 이름만 떠올려도 살며시 미소 짓게 만드는 녀석이 누군고 하니 다름 아닌 칵테일 ‘모히토’다. 모히토는 헤밍웨이가 사랑한 칵테일로도 유명하다. 지금은 관관명소가 된 쿠바의 한 바에 헤밍웨이가 직접 “My mojito in La Bodequita, My daiquiri in El Floridita."라고 써 놓은 글이 걸려 있다고 하던데 다이키리와 더불어 모히토에 대한 헤밍웨이의 사랑이 얼마나 남달랐는지를 알 수 있다. 라임과 민트가 곁들여진 독특한 맛은 기분까지 청량하게 해 주는 마법의 힘이 있다. 지난겨울 우리는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사랑에 빠졌다. 매일 만날 수 없기에 애달픈 마음 가득하지만 날씨가 부쩍 따뜻해지고 있는 요즘 ‘전형적인 여름 칵테일 모히토를 여름에 만나는 느낌은 어떨까?’ 하는 기대와 설레임으로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다. 의심 많은 나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가 버린 모히토. 이번 여름. 나를 좋아해 주고 기다려준 지인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고 싶다.




목운동 조용한 생활


텔레비젼에서 통신사 광고를 보다가 예전에 재미있게 본 영상이 생각났다.
미국 NBC 방송국의 TV쇼프로그램 SNL(Saturday Night Live)의 인기 코너였던 Roxbury Guys의 짐 캐리 편.
표정들이 참 재미있다.
그리고 중독성 있는 음악. 머리에서 자꾸 자꾸 맴돌아... 맴돌아... 맴돌아... ^.^








두 편의 영화 영화

<밀크>

구스 반 산트 감독.
2008년도 숀펜에게 두 번째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객관적인 시각의 잣대를 적절하게 잘 유지한 전기 영화의 수작.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폭력에 맞선 게이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 역의 숀펜은 한치의 의심이 필요 없는
하비 밀크 그 자체였다.
40세 생일 날 애인 스콧에게 " 마흔이 되도록 이렇다 하게 해 놓은 것이 없어." 라고 말하던 하비 밀크.
그후 8년동안 그는 자신과 수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와 영감을 주고 쓸쓸히 사라져 간다.


<리치몬드 연애 소동>
역시 숀펜이 나온다.
젊었을 때도 연기 참 잘 하신다.
영화를 보면서 숀펜이 나올 때마다 시종일관 웃음보를 터뜨리며
" 푸하하하하!!! 미친놈 같애!!!"
그랬는데 정말 연기에 미친 것 같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벌써 어느정도의 경지는 넘어서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어린시절의 제니퍼 제이슨 리도 만날 수 있는데 어찌나 옷을 훌러덩 훌러덩 잘 벗는지...
그리고 피비 케이츠 정말 귀엽다. ^^

포레스트 위테이커와 니콜라스 케이지의 무명 시절 모습도 볼수 있다.
지금과는 달리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니콜라스 케이지는 대사도 한마디 없다. ㅠㅠ

바바라 스트라이샌드와 로버트 레드포드가 나온 <추억>에서 바바라 스트라이샌드 옆에 별 대사 없이 서있던
제임스 우즈, 코폴라 감독 진 해크먼 주연의 <컨버세이션>에 조연으로 출연했던 해리슨 포드, <가스등>의 새침떼기 하녀역을 맡았던 우리에게는 <제시카의 추리극장>의 제시카 할머니역으로 알려진 안젤라 랜즈베리, <이유 없는 반항>의 데니스 호퍼 등 유명 배우들의 무명시절을 보는 것은 나름 큰 발견이고 재미인 것 같다. ^.^

돌림병 꿈꾸는 고슴도치

73. 돌림병

녹음실에서 녹음을 한 뒤 다음 스케쥴로 이동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층계를 올라 주차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제 차 옆에 큰 외제차가 바싹 붙어서 주차를 해 놓은 상태더군요. 너무 붙어 있어서 제 차 운전석의 문을 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반대편 조수석 쪽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번쩍 번쩍 덩치 큰 외제차 안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습니다. 전 안도하며 외제차의 운전석 창문을 ‘톡톡톡’ 두드렸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없었습니다. 여성 운전자가 절 본 것 같기는 한데 심한 썬팅 탓에 식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전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다음 스케쥴까지 시간이 빡빡했거든요.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차 잠깐만 빼 주세요.”하고 말하며 몇 차례 더 창문을 두드렸지요. 이윽코 창문이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날벼락인가요. 여성 운전자는 도끼눈을 뜨고서 저를 향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전화통화 하고 있는 것 안 보여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여성 운전자는 한눈에 보기에도 멋스럽게 치장한 부인이었습니다. 핏발 선 눈을 부라리며 저를 잡아먹을 듯이 으르렁 거리지만 않는다면 분명히 교양 있고 점잖은 분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시종일관 자신이 지금 아주 심각하고 중요한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제가 그것을 방해 했다고 욕 비슷한 단어까지 섞어가며 짖어대는 부인. 전 처음에 흠칫! 놀랐지만 빨리 상황파악을 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어머. 죄송합니다. 썬팅이 진하게 되어 있어서 전화통화를 하고 계신 줄 몰랐어요. 그런데 통화 다 끝나셨으면 잠깐 차 좀 빼 주시겠어요? 너무 좁아서 제가 차에 탈 수 없거든요.” 흥분해서 미친듯이 샤우팅 창법을 구사하던 여인은 제가 침착하게 말하자 순간 조금 멋쩍어 하는 듯 보이더군요. 그리고 한 톤 떨어진 음성으로 다시 자신의 입장을 반복 재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죄송하다고 웃으며 다시 말하자 결국에는 자신이 너무 소리를 지른 것 같다고 사과하며 차를 몰고서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습니다. 다음 스케쥴로 이동하는 차 안. 피식 피식 썩은 웃음이 제 입술 사이로 삐져나왔습니다. 근사하게 차려입고 외제차 안에 타고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토해내던 아주머니, 나름 지혜롭게 대처한 저 자신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모기만한 소리로 “내가 더 미안하네.”하고 황급히 자리를 뜨던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니 보리밥 먹은 후 방귀가 새어 나오 듯 그냥 자꾸 웃음이 났습니다. 누구든지 입장이 있습니다. 근데 그게... 설명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잖아요. 아까 그 아주머니도 잠깐 창문을 내리고 저에게 통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그런 초민망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입니다. 그녀에게 저란 존재는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중요한 전화통화를 방해하는 방해꾼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았던 것이죠.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신경을 긁어댔고 급기야 분노 대폭발!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사람도 난폭한 동물의 일면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흥분하고 분노하면 겉잡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꾸 표출하다 보면 습관이 됩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게 되지요. 급기야 내 기분과 감정만이 중요하게 돼서 막말하는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형편없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지도 잊어버리게 됩니다. 요즘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막말하는 사람들의 동영상이 사회의 돌림병처럼 난무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참기만 하면 병이 된다는 말이 있죠? 하지만 곧이곧대로 표출하면 그것도 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배려와 예의를 잃어버린 그들의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보노 조용한 생활


음악 잘 안 듣지만 운전하면서 지루하면 가끔 듣는 음반 U2의 <ZOOROPA>
테크노 사운드가 보노의 목소리와 잘 어울린다.
보노의 목소리 정말 지적이고 섹시하다.^^
최근 페이스북 상장으로 지분1.5%를 가지고 있는 그가 세계최고의 부자가수로 등극했다고 하던데
잘된 일이지 싶다. 쥬로파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은 <babyface>이다.


최근 TV CF 음악으로 쓰이면서 휘파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마론5의 <Moves Like Jagger>
그의 공연을 처음 본 것은 2011 빅토리아 시크릿 란제리 패션쇼에서다.


해마다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를 꼭 챙겨봐 오고 있는데 작년도 좋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내 기억속 최고의 게스트 뮤지션 공연은 2006년 져스틴 팀버레이크의 공연이 아니었던가 싶다.



소통과 교감 영화

<언터쳐블>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면 평생동안 서로 만날 수 조차 없었을지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났습니다.
운명이라는 것을 믿지 않지만 한 사람이 태어나 저마다 다른 환경과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고 세월을 보내면서 대충 자아의 모습이 정해지게 되죠. 그리고 그 자아의 모습은 그 사람의 삶과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동그란 원모양, 어떤 사람은 별모양, 원뿔 모양...
필립과 드리스는 피부색도 다르고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인생을 살아왔지만 정말 우연하게도 비슷한 자아의 모습을 가지게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래서 둘은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죠. 주위 사람들이 걱정스런 시선을 보내도 둘은 늘 즐겁습니다. 비슷한 자아의 모습을 가졌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허용되고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지요.
참 유쾌하고 좋은 영화입니다. 강요하지 않는 감동도 마음에 듭니다. 
드리스가 떠날 때. 눈물 흘리는 필립의 얼굴을 클로우즈 업 해줬어도 나쁘지 않았겠지만 
그저 조용히 어깨를 들썩이는 필립의 뒷모습을 보여주는 이 영화의  냉정함이 오히려 따뜻합니다. 
전 이 영화에서 필립의 생일날 드리스가 춤추는 장면을 좋아합니다.
장르가 다른 음악을 매개체로 서로 다른 두 사람이지만 충분히 교감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소통의 출발점은 바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죠.
제가 이 장면을 좋아하는 것처럼 또 좋아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바로 <색,계>에서 탕웨이가 양조위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입니다.
간드러지는 목소리와 귀여운 몸짓처럼 사랑스러운 장면입니다.
 

그리고 또 <필라델피아>에서 톰 행크스가 덴젤 워싱턴 앞에서 마리아 칼라스의 아리아를 들으며 노래 가사를 읊조리는 장면도 좋아합니다. 톰 행크스 최고의 연기가 아닐런지...


두 편의 영화 영화

< 데이 워치 >
왜 이제야 봤을까 싶은 영화.
원작 소설을 읽지도 않았고, 전편<나이트 워치>를 보지도 않은데다가 워낙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해 있어서 그런지 엉뚱한 낯설음에 살짝 두통이 온다. 그렇지만 편견의 틀을 깨는 상상력과 표현방식이 시종일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마치 낯선 여행지에 온 느낌이랄까?
티무르가 '운명의 분필'을 찾기 위해 말을 탄 채로 성벽을 뚫고 돌진하는 장면이라던지

붉은 스포츠카가 고층빌딩의 벽을 타고 전력질주하는 장면 등 티무르 베크맘베토브 감독의 스피디하고 직선적이며 통쾌한 장면들이 먹기 좋게 차려 놓은 음식들처럼 즐비하다. 이국적이고 기괴한 향 때문에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폭풍같은 흡입력을 느껴볼 수 있는 것은 공식에 입각한 영화들에 대해 내가 이미 따분함을 느껴서일 수도 있겠다.
일찌기 그의 헐리우드 연출작 <원티드>를 보면서 잠을 잔 것이 미안하다. 그 때는 그의 방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이 영화도 몇년전에 보면서 잤으니까. 흐흐흐...
눈을 똑바로 뜨고 바른 자세로<원티드>를 한번 더 봐야겠다. ^^
그리고 개봉을 앞두고 있는 < 링컨: 뱀파이어 헌터 > 상당히 기대된다.

<세번째 사랑>
원제는 Barney's Version
난 이 제목이 더 마음에 든다.
잔잔한 열정이 느껴지는 평범하지만 특별한 한 남자의 인생 이야기.
연기자들의 연기가 상당히 훌륭하다.
영화 속에 몬테 크리스토 시가의 이름에 얽힌 재미있는 유래가 나온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시가제조의 지루함을 잊게 하기 위해 한 사람이 책을 읽어주고는 했는데 
작업하는 사람들이 유난히 뒤마의 몬테 크리스토 백작을 좋아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나도 사람들을 위해 뭔가를 읽어주는 사람이라 그런지 유독 기억에 남는다.

5년 전 꿈꾸는 고슴도치

72. 5년 전

얼마 전 독일 영화 한편을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과오로 어린 딸을 잃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그의 인생은 망가질 데로 망가져 버립니다. 5년 전 그는 성공한 화가였지만 죄책감으로 인해 더 이상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버렸고 아내도 그의 곁을 떠난 지 오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신비한 문을 발견합니다. 그 문을 통해 그는 5년 전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극적으로 딸의 목숨을 구하게 되죠. 5년 전. 5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전 이 영화를 보면서 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5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5년 전이면 2007년 2월입니다. 2007년 2월에 난 무엇을 하며 지냈던가. 5년 전으로 돌아가서 바꾸고 싶은 선택이 있는가.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나는 일이 없어요. 되돌리고 싶을 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었던 것이라고 봐야 하겠지요. 며칠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서로 가볍게 목례를 나눈 후 아주머니께서 물으시더군요. "아직도 그 일 하세요?" 아주머니와는 몇 년 전, 그러니까 제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에 지금과 같은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인사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아마 그때 제가 직업이 성우라고 소개한 것을 기억하고 계셨던가 봅니다. 전 순간 조금 의아했습니다. '당연한 것을 왜 물어보지?' 그리고 “네. 그럼요.” 하고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의례적인 어색한 대화를 나눈 후 집에 들어오고 한참이 지나서야 이해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살아가면서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두기도 하고 더러 아예 직업을 바꾸기도 하니까요. '성우'라는 두 글자. 단순히 직업이라고 말해 버리기에는 글쎄요... 어느덧 이제는 애써 지울래야 지울 수 없는 하나의 문신이 됐습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부모님이 '이명선'이라는 이름 석자를 지어 주신 것처럼 '성우'라는 두 글자는 제가 선택한 저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저의 정체성 중 하나를 설명해주는 굵직한 부표인 셈이죠. 부모님이 물려주신 무형의 악기 ‘목소리’를 가지고 참으로 많은 곡을 연주하며 살아왔습니다. 처음에 전 이 악기를 잘 다룰 줄 몰랐습니다. 악기의 성질에 맞게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어요. 그래서 어떤 곡을 연주하면 정말 만족스러운데 어떤 곡을 연주하면 형편없을 때도 있었답니다. 듣는 사람들은 어떠했을지 모르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둘 사이의 간극이 어마어마했거든요. 요즘 투니버스에서 8기 후배들을 뽑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어떤 사람들이 새 식구가 될까 궁금해져요. 그리고 그들의 신선한 아우라가 기대됩니다. 서툴지만 자신이 가진 악기를 가지고 열심히 연주하는 그들의 열정은 때로 숙련된 연주자의 그것보다 더 가치 있습니다. 연기는 잘하고 못함의 정확한 기준이 없어요. 정답이 없습니다. 수학공식이 아니니까요. ‘느낌’입니다. 자신만이 나타낼 수 있는 ‘느낌’이 없다면 그 연기자는 좋은 연기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전 항상 생각합니다. 현재의 얼굴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보여주는 지도라고요. 전 5년 전. 아니, 10년 전. 아니, 처음 성우가 됐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습니다. 조금 오만한가요? 물론 후회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너무 너무 많죠. 그러나 그 모든 시행착오들이 모여 지금 거울에 비친 제 얼굴을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랬었지.’ 하고 웃을 수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현재의 제 모습이 그럭저럭 불편해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있으면 새내기 후배들을 보며 과거의 저와 조우할 수 있겠군요. 저마다의 악기를 들고 나타난 새 식구들에게 전 머리 하얀 할머니처럼 까마득하게 보이려나요? 그렇다면 인자한 미소를 가진 할머니이고 싶네요.

                                                                       < 5년 전의 나 >

촛농날개 꿈꾸는 고슴도치

4. 촛농날개

성우생활을 하면서 가장 대사량이 많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 <그남자 그여자> <정글은 언제나 맑음 뒤 흐림>이다. 대사량이 적었던 작품은 <닷핵><아즈망가 대왕> 얼마전에 녹음한 <어벤져>정도?

성우생활을 하면서 대사량이 많은 작품과 적은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연기하기 어렵냐고 묻는다면 난 후자다. 분명 힘들다어렵다는 다르니까. 전자는 테크닉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아서 순발력과 센스, 그리고 강철의 목. 이 세가지만 가지고 있다면 어느정도 소화해 내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적은 양의 대사로 그 인물을 표현할려면 좀 난감하다. 이를테면 어벤져에서 레이라가 나를죽여줘…”나를죽여봐…”자꾸 이러는데 그 인물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애매한 감정으로 대사를 칠 수 밖에 없다.

 여기서 또 한가지. 단순히 안다이해한다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2000년에 <그남자그여자>를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시사하고 열심히 연기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난 당시에 채은서를 잘 알기만 했지 잘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열심히 할 수는 없다라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로 연습하고 녹음했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연기자가 자신이 맡은 캐릭터를 잘 이해하기 위해선 화면과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부분도 알고 있어야 한다. 즉 연기자는 그 캐릭터와 가장 밀접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 선배님들이 라디오드라마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여지는 현상에 치우치지 않고, 오히려 그 현상들을 리드하면서 연기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이 바로 연기자의 힘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채널 특성상 라디오 드라마를 접해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음 연기를 배울 때 난 그렇게 배웠고 지금까지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후배들에게도 항상 충고한다. 대본을 받으면 절대로 화면부터 보지 말고 대본을 보면서 상상하는 단계를 거쳐라. 그리고 시사할 때는 자기 것만 삐리리~ 돌려서 보지 말고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도록 노력해라. 라디오 드라마를 연기하진 않지만 성우연기의 기본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성우인생에 있어서 전속시절 만큼 중요한 시간은 없다. 전속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성우전체 인생이 좌지우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속시절은 자세를 배우는 시간이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연기해야겠다는 자세. 어떤 마음으로 극중 인물과 조우해야 하는지 그 자세를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다. 때문에 난 너무 일찍 신인에게 많은 대사를 맡기는 것을 우려의 눈길로 본다. 예를 들어 더빙의 경우, 옵티컬에 입 맞추기에도 급급한 신출내기 성우가 방대한 대사에 내포되 있는 뜻을 맛갈스럽게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그리고 나머지 선배 연기자들의 대사를 받아주고 받아치는 자연스런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순발력과 센스, 강철의 목을 가지고 있다면 결과물은 그다지 억지스럽게 들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애니매이션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나는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이 지혜를 얻어가듯 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생김새만 그럴듯한 촛농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난다면 뜨거운 햇빛으로 인해 날개는 어느새 녹아 없어지고 만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의 열정과 고민과 희노애락이 촘촘히 담긴 깃털날개는 좀 더 오~~랫동안 하늘을 비행하며 자신을 지탱할 수 있는 을 부여해 줄 수 있다. 그리고 그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까지도 가 볼 수 있는 것이다.


작은 부상

전 녹음하면서 작은 부상을 곧잘 입습니다.

부상이라고 하면 좀 거창한가요?

바로 대본에 손을 잘 베인다는 것이죠.

종이에 베여본 경험 다 있으시죠?

그 느낌이 참 껄쩍지근합니다. 아프다고 말하기도 민망합니다.

심하게는 피까지 나기도 하는데 말이죠.

얼마 전에 동화 내레이션 녹음을 하려고 녹음실에 갔더니 대본은 없고 배역표랑 TV 모니터만 딸랑 있더군요. 책을 그대로 복사한 대본이 산처럼 쌓여 있어야 정상이거든요.

어찌 된 일인고 하니 녹음실 측에서 책 지면을 파일화 시켜 놓으신 것이었습니다.

TV모니터가 곧 대본이 된 셈이지요.

정말 편했습니다.

시창 너머에 계신 엔지니어분이 파일을 클릭해서 페이지를 넘겨주셔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어갈 염려도 없었습니다.

물론 손을 베이는 불상사도 모면할 수 있었죠.

아이패드나 갤럭시탭에 대본을 저장해서 읽어도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게 때문에 더빙은 곤란하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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