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듀! 아따맘마 꿈꾸는 고슴도치

57. 아듀! 아따맘마

지난 주말 청평 자연 휴양림으로 이미자 선배님을 모시고 후배들과 함께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른바 <아듀! 아따맘마 MT>. 구체적인 일정을 계획한 동동이 범기와 전속실장 국진이의 꼼꼼한 준비 덕에 맑은 공기 마시면서 배불리 먹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2004년부터 여덟 번으로 나누어 6년째 녹음한 아따맘마. 시즌 8을 끝으로 아리와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많이 섭섭하다. 2004년 봄 어머니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내게 용기와 사랑을 심어준 작품이었는데. 빠른 컷과 많은 양의 대사를 속사포처럼 내뱉는 연기에 익숙해 있던 내게 <아따맘마>는 느림의 미학을 경험하게 해준 새로운 장르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엄마를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일상의 소소함을 연기할 때 돌아가신 엄마가 떠올라서 가슴이 아프기도 했지만 반면 기쁘기도 했다. 다시는 불러볼 수 없는 ‘엄마’라는 두 글자. 이 애니매이션을 통해서 다시 불러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었다. 아마 첫 화 시사를 하면서 펑펑 울었더랬지. 이런... 그때 생각 하니까 또 눈물이 나네. 우리 엄마는 절대로 다정한 분이 아니셨다. 생활고로 인한 스트레스를 자주 딸들에게 풀기도 하셨고, 사랑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애교를 부리면 “요구 사항이 뭐야?”하시며 마치 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힐책하는 시선으로 싸늘하게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알랭 드 보통이 에세이 <불안>에서 -부엌 바닥에 집짓기 블록을 늘어놓기만 해도, 부드럽고 통통한 몸을 뒤치며 믿음이 담긴 눈으로 말똥말똥 바라보기만 해도 우리를 끌어안아 주었던 그 관대하고 무차별적인 사랑’-이라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표현한 것을 읽으며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는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 엄마한테 안겨 본 경험? 엄마 손을 잡아본 경험? 한번? 두 번? 있다고 해도 아주 잠깐이었다. 오죽하면 어린 마음에 ‘계모가 분명해!’하고 생각했을까. 다행히도 계모는 아니었다. 지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키며 체형이며 얼굴 생김새까지 엄마를 쏘옥 빼닮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인할 수 없는 마지막 증거가 있으니! 바로 목소리다. 화나실 때마다 집이 떠나가라고 소리 질러 대시던 그 히스테리컬한 목소리. 그 목소리가 바로 내 목소리다.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을 보고 자라서 소리를 잘 지르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비유를 해보자면 <신세기 사이버포뮬러>에서 하야토가 아스라다를 타고 제로의 영역을 느끼는 그 순간을 난 엄마가 소리 지르는 것을 보며 이미 가상 체험 했다고나 할까? 내가 목청이 좋아서 소리를 잘 지르는 것이 절대 아니다. 난 그저 일상생활 속에서 제로의 영역을 보고 들으며 자랐을 뿐인 것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글을 읽는 분들이 이미 돌아가신 우리 엄마를 괴상한 사람으로 오해 할까 봐 조금 걱정이 된다. 그건 아닌 것 아시죠? 후후후... 사춘기 때는 엄마가 미웠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알고 있다. 엄마는 단지 감정 표현에 익숙하지 않으셨던 것 뿐이라는 것을. 성인이 되어 가끔 집에 내려가면 나약하고 아이처럼 순수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도 했던 엄마. 요즘 가끔 친한 후배에게 전화하면 “엄마집이예요.”하고 말할 때가 있다. 난 잘 부러워하지 않는 성격인데 그 때만은 어쩔 수 없다. “엄마집이에요.”, “엄마한테 왔어.”하고 나도 일상적으로 말할 수 있다면... 갑자기 들이닥쳐도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시는 엄마가 살아 계시면 좋으련만. 자매나 친구에게 할 수 없는 푸념을 늘어놓아도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영원한 나의 편. 따뜻한 말 한마디 해 주신 적이 없는 매몰찬 분이셨지만, 칭찬보다 마음을 후벼 파는 말씀을 더 많이 하셨지만 오늘따라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거 아시나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전 당신을 점점 더 닮아가고 있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성 있는 ‘목소리’를 물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그 목소리로 많은 기쁨을 누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엄마... 보고 싶어요...

울적하다. 아따맘마도 그립고. 엄마도 그립고.


덧글

  • 아돌군 2011/04/17 19:48 # 답글

    장애인시설에서 일하는데 매일 컴퓨터로 아따맘마만 하루종일 틀어보면서 웃는 아이가 있어서 매일 목소리 듣고 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firecat 2011/04/18 14:10 #

    아... 마음이 짠하네요... 감사합니다.
  • 루이지 2011/04/19 21:15 # 삭제 답글

    아 이제 아리 목소리를 못 듣는 건가요 ㅠㅠ
  • qpvmffl987 2011/04/19 21:29 # 답글

    아따맘마 굉장히 좋아했던 작품이었는데...
    명선님한테도 8년간 함께 했던 캐릭터와 헤어져서 슬프실 듯
  • firecat 2011/04/20 21:24 #

    항상 저의 마음 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것 같아요~^^
  • 줄자 2011/06/07 18:16 # 삭제 답글

    아따맘마 애청자이자 못난 딸입니다. 명선 성우님의 글을 보니 저도 눈물이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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